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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몸 된 교회, 만세운동을 전국 지체로 전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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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은혁 작성일19-03-08 14:57 조회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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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과 한국교회] 3·1운동 어떻게 확산했나1919년 경기도 화성 주민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한 장면을 그린 기록화. 국민일보DB

1919년 3월 1일 오후, 약속된 시간이 지났는데도 서울 탑골공원에는 민족대표들이 도착하지 않았다. 민족대표들이 유혈사태를 우려해 근처 태화관으로 자리를 옮겨 독립선언서를 낭독했기 때문이다.

민족대표가 없다고 그대로 해산할 수는 없었다. 누군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해야 했다. 눈치만 보며 웅성거리던 그때 한 청년이 팔각정에 올랐다. 그는 품에서 종이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독립선언서였다. 그 소리를 듣고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선언서 낭독이 끝나자 우레 같은 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사람은 황해도 해주읍 남본정교회 전도사이던 정재용이었다. 그는 이 일로 같은 해 8월 체포돼 평양형무소에서 2년 6개월을 복역했다. 출소 후엔 의용단에 가입해 항일운동을 이어갔다.

3·1운동을 기점으로 전국 주요 도시에서는 만세운동이 이어졌다. 4월 1일엔 아우내장터에서 만세소리가 터져나왔다. 현장의 소식을 외부에 전한 사람은 선교사였다. 1919년 11월 6일 제12차 미국감리회 조선연회가 서울 정동교회에서 열렸다. 3·1운동으로 지도자와 교인들이 옥고를 치르고 있어 평소보다 6개월이나 늦게 열린 연회였다.

3·1운동의 여파가 생생했던 연회에선 지역별로 피해 보고가 있었다. 충남 천안지방 감리사 FEC 윌리엄즈 선교사가 보고서를 들고 일어섰다. 예배당을 천천히 돌아본 윌리엄즈는 입술을 뗐다.

“병점시장에서 4월 1일 만세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중 가장 참혹하고 차마 말로 옮기기도 어려운 일은 한 감리교인 가족이 당한 일입니다. 부모는 현장에서 일제에 의해 참살당했습니다. 딸은 3년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윌리엄즈 선교사가 전한 참상은 이화학당에 다니던 유관순 가족이 겪은 비극이었다. 유관순은 3년형을 선고 받고 서대문형무소에 갇혔다. 아버지 유중권과 어머니 이소제는 아우내장터에서 사망했다. 오빠도 같은 날 공주읍 만세 시위를 이끌다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민족대표 33인 중 감리교인만 9명이었다. 대표로 나섰던 지도자들 외에도 독립선언서를 외쳤던 정 전도사나 집안이 몰락한 유관순과 같은 감리교인들이 일어나 독립을 외쳤다.

3·1운동은 기독교가 인원을 동원해 성공할 수 있었다. 당시 장로교는 ‘총회-노회-시찰회’ 조직을 기반으로 독립운동의 정보를 퍼 날랐다. 감리교는 ‘연회-지방회-구역회’로 이어지는 세포조직들이 독립운동에 기여했다. 이 같은 교회 구조는 비밀리에 독립선언서와 각종 정보를 유통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3·1운동을 앞두고 경기도 이천에서 열린 감리교 지방사경회는 전국으로 만세운동을 확산시킨 구심점이었다.

1919년 3월 1일 오후 1시 평양에서 장로교의 장대현교회와 감리교의 남산현교회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교인 1800여명이 시가행진에 참여했다. 진남포에서는 오후 2시 진남포감리교회에서 독립선언서가 울려 퍼졌다. 정춘수는 2월 말 독립선언서를 들고 원산으로 달려갔다. 이를 바탕으로 3월 1일 원산 장날에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현대와 같은 통신시설이 없던 때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만세운동을 전개하려면 기존의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길뿐이었다. 조선총독부의 통계에 따르면 3월 중순까지 하루 평균 12~13개 지역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는 매일 25개 지역에서 독립의 염원이 불타올랐다. 만세운동의 거점은 교회와 미션스쿨이었다. 주일예배를 마친 교인들은 만세를 외치거나 수요일 저녁 예배 후 야간 시위를 벌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에 있는 희생자 23명을 추모하는 조형물 모습. 국민일보DB


교회는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대표적인 사건이 제암리 교회 학살이다. 이 교회 권사 등이 주동이 된 구국동지회가 3월 31일 발안 장날 시위를 주도하고 밤마다 산에 올라 야간 시위를 벌였다. 일본군은 진압 부대를 제암리로 출동시켰다. 군인들은 주민들을 교회로 모은 뒤 불을 질렀다. 불은 서풍을 타고 제암리 마을 전체를 태웠다.

제암리 교회 학살 사건은 수원지방 감리사 노블 목사가 12차 미남감리회 조선연회 때 보고했다. “지역에선 목사 5명과 인도자 13명이 수감됐고 교인 13명은 일경에 의해 사망했습니다. 남양과 제암, 오산의 7개 예배당이 파괴당했고 근처 가옥 329개소가 전소되고 1600명이 집을 잃었습니다. 신자와 불신자를 합해 82명이 사망했다고 들었습니다.”

감리교는 3·1운동을 통해 연합운동의 불씨를 당겼다. 감리교와 장로교의 연합은 각 교단의 중심지였던 평양과 서울을 잇는 가교가 됐다. 감리교 신홍식 목사와 장로교 길선주 목사는 조건 없는 협력을 약속했다. 대규모 인원 동원도 이런 연합이 기반이 됐다. 청년단체인 YMCA까지 참여하면서 세대를 초월한 민족 대연합을 이룰 수 있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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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사회안전망개선위원회가 ‘한국형 실업부조’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고용 안전망 강화 합의문’을 내놨다. 한국형 실업부조는 고용보험 혜택을 못받는 저소득 실업자에게 월 50만원가량을 6개월 동안 지급하는 것이다. 합의문은 실업급여 인상, 출산·육아 휴직자 임금 지원 확대 등 노동계 요구를 대부분 반영했다.

경사노위가 재원 조달 등에 대한 세밀한 밑그림 없이 실업부조 시행을 밀어붙이자 여기저기서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한번 주기 시작하면 지원 금액과 대상이 자연히 늘게 마련이어서 재정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게 뻔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한계산업과 부실기업에서 밀려나는 노동시장 약자를 위한 안전망이 아직 미흡한 것도 사실이다. 조선과 자동차 등 주력산업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한 것은 근로자들에 대한 고용 안전망이 충분하지 않은 측면도 있다.

그렇지만 경기침체에다 노동시장이 경직돼 고용 사정이 날로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재정에 의존하는 안전망 확충만으로는 근로자의 ‘일자리 불안’을 해결할 수 없다. 일자리가 넘쳐나 근로자들이 원하는 직종으로 자유롭게 옮겨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고용 안전망도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주요 선진국들이 안전망 확충과 함께 파견직 확대, 저(低)성과자 해고요건 완화 등 노동개혁을 추진한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한때 ‘유럽의 병자’로 불리던 독일과 네덜란드는 ‘유연안정성(flexicurity)’을 높인 ‘하르츠 개혁’과 ‘바세나르 협약’으로 경제 활력을 되살렸다.

노조에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노동정책을 보완하는 것도 시급하다.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등 사용자 방어권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폭넓게 보장해야 한다. 선진국 중 한국은 파업 시 대체근로자 투입이 금지된 거의 유일한 나라다. 사업장 점거 파업 역시 외국에선 엄격하게 통제된다. 고용 안전망 구축과 노동시장 개혁이 동시에 추진돼야 일자리가 늘고 근로자 복지가 증진되듯, 노사 간 힘의 균형이 맞춰져야 산업 현장 불확실성이 줄어 국가 경쟁력도 향상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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